Kyeseung Kim's profile

그냥 내가 미안해

방금 있었던 일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따라 좀 더 천천히 가고 싶어서 평소에 타던 누비자를 타지않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집으로 오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벽 울타리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무언가를 쫓는 듯이 빠르게 도로를 건너가려고 했다. 굉장히 빨랐다! 나는 내 앞에서 튀어나온 고양이를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4차선 도로였는데 중앙선을 넘어 3번째 차선에서는 굉장히 빨리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걸까? 굉장히 빠른 고양이와 굉장히 빠른 자동차는 설마했지만 결국 만났고 고양이는 한 바퀴 구른채 움찔거리고 가만히 있었다. 자동차는 굉장히 빠른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휑하고 가버렸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이윽고 초록불이 되었다. 나는 달려가서 고양이를 살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죽은것이 아님에 안도했지만 나를 할퀴지는 않을까 싶었고, 얘를 어떡해야 좋을까 싶었다. 우선은 차에 더 밟히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아서 인도로 옮겼다. 나의 조심스러운 손길은 크게 의미가 없었는지 고양이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하고 흘러내렸다. 나의 품안에 있는 고양이는 내가 해치지않을거라고 생각한건지 내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기력이 없었는지 애완고양이마냥 아무 저항없이 있었다.
 
 119에 전화를 해야지 싶었으나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동물의 경우에는 119에서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고 하였고 또 고양이가 구급차같은거에 실려가서 응급실로 옮겨지는 모습도 조금 이상했다. 택시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가는게 가장 맞다고 판단하였으나 그것도 나를 섣불리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지금이 밤 10시인데, 그때까지 하는 동물병원이 과연 어디에 있으며, 데려가서 수술을 해야할 판인데 죽을지도 살지도 모를 애를 수술시키면 그 돈은 누가 낸단 말인가. 하지만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보았을때 생명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돈이 문제인가, 돈이나 다시 벌면 그만이지만 생명은 고귀하지 않던가. 한낱 돈 때문에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을 보내야만 하는가. 내가 쓰레기인걸까? 아님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을 계속 하면서도 핸드폰으로 24시간 하는 동물병원을 검색했으나 와이파이가 아니라 생 데이터로 검색을 하기엔 3G무제한 요금제의 인터넷 검색속도는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고 여린 생명이 피를 흘리고 생사를 오락가락하는데 네모난 화면에는 동그라미만 계속 돌 뿐이었다. 나는 먹통같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생각했다. 10분이면 상남동 번화가에 도착하니 그때까지만 이 아이가 버텨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안고 몇 걸음 내려가던 중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갈려는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가 버텨야 할 10분을 3분으로 단축시켜 줄 것만 같은 구세주로 느껴졌다.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바쁘신가요? 다행히 그리 바쁘진 않다고 했다. 이 아이가 차에 깔려서 한 바퀴 굴렀는데 얘좀 병원에 데려가 줄 순 없으신가요? 불행히도 그 정도로 한가하진 않다고 했다. 119에 전화해보라고 했다. 거기 동물도 살려줄까요라는 내 물음에 유능한 119는 동물도 살려줄 거라고 하고 그는 가버렸다.
 
 119에 전화를 걸며 생각했다. 진작에 걸걸 그랬다고. 난생 처음 걸어보는 긴급전화였다. 네, 일일굽니다하는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 차분함이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댔을 위급한 사람들을 달래줬으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도 내가 치인 것이 아니기에 차분했다. 저기 고양이가 차에 치여서 지금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데 혹시 고양이도 살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차분한 목소리는 차분하게 시청에 있는 그 쪽을 담당하는 전화를 알려주었다. 지금 전화해도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당직이 있어 지금 전화해도 받는다고 했다. 거기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의 톤은 비슷했으나 차분함보다는 뭔가 귀찮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물었다. 그쪽은 더 유능하셔서 혹시 이 아이를 살려주실 수 있느냐고. 그러나 어쩐지 자꾸만 고양이 시체를 처리하는 담당을 보내겠다는 쪽으로 대답이 나왔다.
 
 그래 공무원이지. 공무원에게 이 아이를 살려내라, 따질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뭔가 답답해 고양이를 어루만졌다. 고양이는 힘겹게 숨을 헐떡이다가 이내 움직이질 않았다. 야생 고양이 주제에 털은 또 왜이리 보드랍냐, 마음아프게. 내가 말한 위치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였고 나는 이제 내 갈길을 가면되는데 그것도 잘 안되었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이 아이를 안고 택시를 붙잡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하고 말이다. 내릴때도 잔돈은 됐어요 하고 돈을 던지듯이 드리고 동물병원 문을 세차게 열어재끼며 의사야앙바안! 하고 소리칠 수 있었을까? 돈 없는 내 잘못이 아니라면, 119가 왜 동물한테는 출동을 안 하는 걸까? 우리가 세금을 조금 더 내면 이 아이에게도 산소호흡기와 들것과 맥박을 재는 장치 같은 것들의 혜택을 나눌 수 있었을까? 그냥 답답함에 아직은 따뜻한 이 아이를 한번더 어루만져 본다.
 
 눈이라도 감겨주려 했으나 얼굴 생김새가 사람과 달라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는 것만으로 감겨지진 않았다. 인도 한 가운데 놔두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고 구석으로 옮겨놓자니 공무원이 못 볼까봐 그러고 싶지않았다. 결국 가운데도 아닌 가장자리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불편하게 눕혀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내 잘못 아닌데…내가 잘못한건 아닌데, 그냥 내가 미안해.
그냥 내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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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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