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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이루어진 신기루의 세계

봄이 되니 그들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온 산하의 귀한 생명들이 되살아났고, 뒷마당 구상나무 숲을 떠났던 새들도 다시 돌아왔으니 경이로운 섭리다. 세계는 혼돈과 우연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시공(時空)이 질서와 필연 아닌 것이 없다. 세계는 톱니로 움직이는 시계이며, 씨실과 날실로 잘 짜인 직물이다.

폴 세잔은 대지를 수평적인 것, 그리고 존재하는 사물을 수직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예술가 특유의 직관력이 번득인다. 권성원 영감의 시발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모든 대상은 구, 원통, 원추 등의 입체적 기하형으로 환원된다는 명제를 음미하면서도, 이 또한 신기루일 수 있음을 진지하게 독백한다.

큐빅들이 산더미 같은데도 그는 평지(flatland)라 부른다. 가까이서는 선들의 나열만 있을 뿐인 평지인데, 조금만 뒷걸음을 치면 견고한 입체들이 지각된다. 공들여 그은 선들의 집적(集積)을 있는 그대로 보라 해도, 이미 기울어진 의식을 리셋하기 쉽지 않다. 저자의 성찰과 독자의 오독은 창조적 상호작용의 근간인 듯.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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