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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신문 읽던 ‘정동 노숙 할머니’… 소설로 부활하다

한은형 장편 ‘레이디 맥도날드’

“무릎까지 오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하얗게 센 머리, 그리고 두 개의 쇼핑백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 행색으로 나타나 맥도날드에 머문다고.”

이 ‘행색’이 낯설지가 않다. 언젠가 들어 본 이야기다. ‘정동 맥도날드 할머니’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한 노숙인 여성에 대한 묘사가 아닌가.


ⓒ목정욱

2013년 사망 후 잊히던 그의 삶이 소설로 복원됐다. 한은형(사진) 작가의 신작 ‘레이디 맥도날드’(문학동네)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그의 말과 행동, 일상 그리고 과거 행적을 토대로 있었을 법하고, 있었기를 바라는 ‘상상’을 더하여 재조명했다.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간파해 온 한 작가가 ‘거짓말’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소설로, 소설의 힘과 가능성을 되짚게 하는 흥미로운 ‘팩션’이다.

맥도날드 할머니는 생활비가 부족해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야 했고, 방송이 나간 후 다가온 도움의 손길도 마다했다. 머리는 늘 단정했고, 영자 신문을 꺼내 읽곤 했다. 사람들은 그를 측은하게 여기면서도 허영과 과거에 매인 유별난 인물로 바라보곤 했는데, 소설의 시선은 다르다. 노숙인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어서 주목받았던(그러나 이해는 별로 받지 못했다) 그를 소설은 최선을 다해 멋있고 아름답게 살고자 했던 ‘레이디’ ‘김윤자’로 재탄생시킨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듯 산책과 독서, 햇볕을 즐겼고, 일본문화원에서 예술영화를 봤다.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여자들의 웃음을 생각했고, 노인들의 뻔뻔함과 염치없음을 생각했다. 어느 날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생각했고,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향기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소설은 김윤자의 삶을 통해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에 충실하고 소소한 풍요로움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평범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누군가에겐 절실하고 절대적인 ‘생존’의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백수린 소설가의 추천사를 빌리면, “폭력적인 세계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사는 일의 어려움과 귀함을” 안다면, ‘별종’ 같은 ‘레이디’의 삶에 조소도 동정도 비난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용기있고 꿋꿋한 삶인가.

한 작가는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해 “어쩌면 나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정하고 깨끗하고 화사하게”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작가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또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을 많이 소유하게 되시길 바란다”고 했다. ‘레이디’가 그랬듯 말이다. 그러니까, ‘레이디’식으로 말하면, “기쁨은 오래 간직하고, 힘들어도 울지 않기.”
박동미 기자(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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