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youn Lee's profile

A year with a stray cat길고양이와 함께 한 1년

길고양이와 보낸 1년 : 고양이를 바라보는 건 다른 세상을 슬쩍 엿보는 일
꿈에도 몰랐다. 길고양이 밥을 주게 될 줄은.
아파트에서 심학산 자락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며 처음 길고양이를 만났다. 눈밭을 헤치고 뭐라도 얻어먹겠다고 찾아오는 불청객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중 거실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안을 들여다 보는 뻔뻔한 노란 고양이를 누룽지라 부르기 시작하며 나의 동네 고양이들과의 묘연은 시작되었다. 누룽과 다른 동네 고양이 친구들은 어느 날은 하얗게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고 오고, 어느 날은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어느 날은 이른 새벽에, 어느 날은 한밤중에 찾아온다. 며칠씩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어느 순간 발길을 끊기도 한다. 목소리 없이 눈빛과 표정으로 말을 거는 동네 길고양이 친구들. 기다림이 익숙한 동네 길고양이 친구들이 생겼다.
서울대공원 야외 전시를 준비하며 지난 1년간 마당에서 만난 길고양이 친구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후광을 단 채 기울어진 지구본 위에 올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고양이들이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너무 재미있었다. 마당에 찾아오는 길고양이 친구들의 엉뚱하고 예쁜 모습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희 출세했다며, 모델 좀 해보라며, 닭고기를 삶아 나르며, 사진을 찍고 말을 건넸다.
작업을 한창 만들던 즈음 누룽지가 가을에 낳은 새끼들 중 몇 마리가 갑자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이상했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지? 사실 이때까지 별다른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약속이 있어 분주했던 어느 날 아침, 누렁이는 며칠 전 사라진 다른 친구들처럼 아침 밥을 안 먹고 웅크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곱이 잔뜩 낀 채 마당 데크 아래 들어가 있던 누렁이를 발견했고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주변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 누렁이는 조용히 마지막 숨을 놓았다. 아프다고 소리 한번 안 지르고 조용히 떠났다. 우리집에 오던 친구들 중 가장 장난을 많이 치던 누렁이는 이렇게 갑자기 떠났다. 누렁이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건 말 그대로 이제 아침에 더 이상 꼬리를 세우고 밥을 먹으로 오지 않는다는 거다. 닭고기를 들고 데크에 나가도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는 거다. 4월에 찾아와 11월 중순에 떠났으니 8개월 정도 살았던 건가...정을 안 주려고 마땅한 이름도 없이 노란 고양이라 그저 누렁이라 불렀던 고양이다. 내가 본 고양이 중 가장 풍성한 꼬리를 가진 예쁘고 애교 많은 고양이였다. 누렁이 뿐 아니라 그저 하얀애라 불렀던 누렁이 형제들, 그리고 가을에 태어난 누룽지와 주차장의 새끼들도 모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슬퍼할 새도 없이 며칠 간격으로 줄줄이 떠난 아이들을 보는게 너무 비현실적이라 슬프기보다 무서웠다.
말로만 듣던 범백때문이다. 범백이 뭐길래…난 그저 속이 안좋아 밥을 안 먹는구나 했는데… 하루 이틀 사이…아니 단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눈 앞에서 모두 스러져갔다. 도대체 왜 ! 어디서 바이러스가 시작된 걸까?? 줄초상이 난 우리 집 마당에서 정말 오랜만에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아침마다 허전해진 마당을 바라보며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또 울었다. 몇 날 며칠 누렁이와 떠난 아이들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집에 돌아오면 거실 문 먼저 열고 찾았던 누렁이다. 안보이면 궁금했고 매일 보이면 귀찮다고 여겼던 누렁이였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의 무지 때문일까? 예방접종을 안 시켜서? 고양이를 만져본 적도, 키워본 적도 없는 내가 길고양이를 줄줄이 잡아다가 예방접종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내가 괜히 밥을 줬나? 도대체 왜? 
신나던 길고양이 작업이 어느새 그들을 추억하는 일이 되 버렸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1년간 마당에서 만난 누룽지와 누렁이, 그리고 종종 마당을 오가던 걱정되는 동네 친구들이다. 한동안 누렁이가 떠났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렁이는 8개월의 짧은 생을 우리 집 마당에서 뛰어놀고 나무를 타고 밥을 먹고 형제들과 레슬링을 하고 새로 오는 낯선 고양이들에게 밥을 내주고 같이 놀고 서로 기대고 비를 맞고 집안을 들여다보며 즐겁게 지냈다.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고 싶다. 너무 예쁘고 천사같았기에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신나게 살고 고양이 별로 떠났다. 하루이틀 사이에 떠나가버린 아이들을 보자니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아침마다 문을 열고 매일 오던 아이들이 안 오면 혹시나 죽었을까 조마조마했다. 매일 아침 밥을 내주며 친구들이 살아있나 확인했다.
가까이서 이들을 바라보는 건 기쁘지만 슬프다. 누룽지는 더이상 새끼를 키울 때처럼 우리집에 머물지 않는다. 누룽지에게도 안좋은 기억이 있는 걸까? 누룽지는 이제 밥만 먹고 바로 사라진다. 아침에 목청 것 부르면 저 산 너머에서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밞고 내려와 밥만 먹고 얼른 자리를 떠난다. 누룽지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누룽지 뿐 아니라 걱정되는 이 동네 친구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길고양이를 통해 묘생을 보았다. 또 인생을 보았다. 거창하게 말하면 누렁이와 친구들은 나에게 죽음을 알려주고 떠났다. 이들은 마당에만 있는게 아니다. 골목 골목에, 도시 곳곳 공터에, 창고에, 아파트 지하실에, 주차장에, 집 주변 수풀속에도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한켠에  壽(목숨 수) 를 써 넣었다. 이들이 오래 살다 떠났으면 좋겠다. 너무 짧게 살다 갔다고 슬퍼하는 건 어쩌면 살아있는 자, 인간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봄 여름 신나고 즐겁게 뛰어놀다 간 누렁이는 즐거운 기억만 가지고 갔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또한 인간의 착각이겠지.

작품이 설치된 대공원은 겨울이라 황량하다.
어서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푸르른 잔디가 올라오고 나무에 꽃이 피면 대공원에 다시 누렁이를 만나러 가야겠다. 작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뀌는 계절마다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기대 된다. 누렁이 뿐 아니라 대공원에서 함께 뛰어 놀 우리 주변의 고양이 친구들을 추억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지만 잘 보이지 않는 동네 친구들을 기억한다. 이 친구들을 언제 까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난 그저 내가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동물원에 설치한 다양한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변의 다른 세상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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